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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은 왜 늘 결과만 보고 과정을 잃어버릴까

    결과로 말해지는 교육의 언어

    교육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은 성과, 결과, 성취다.
    얼마나 빨리 읽는지, 얼마나 정확히 쓰는지, 무엇을 해냈는지.
    아이의 배움은 늘 숫자와 목록으로 정리되고, 과정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배움은 원래 시간이 걸리고, 흔들리고, 돌아가기도 하는 일인데
    교육은 왜 이렇게 결과를 서둘러 요구하게 되었을까.


    결과 중심 교육이 만들어낸 효율성의 함정

    결과 중심 교육은 효율적이다.
    평가하기 쉽고, 비교하기 쉽고, 설명하기 쉽다.
    그래서 제도는 자연스럽게 결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 효율성은 아이의 내적 경험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는 무엇을 느꼈는지, 어디에서 막혔는지, 왜 멈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해냈는가’ 혹은 ‘못 해냈는가’만 남는다.


    정신분석이 바라보는 배움의 관점

    정신분석은 늘 결과보다 과정을 본다.
    무엇을 선택했는지보다, 왜 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욕망이 생기고 어디에서 멈추었는지를 묻는다.

    아이의 배움도 마찬가지다.
    배움의 과정은 단순한 연습의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는 좌절, 불안, 기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함께 얽혀 있다.


    과정이 지워질 때 아이에게 남는 것

    과정을 지워버린 교육은 이 감정들을 다루지 못한 채 결과만 요구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실패를 배움의 일부로 경험하지 못한다.
    실패는 곧 ‘능력 없음’이 되고, 과정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결과만 남은 자리에서 아이는 점점 시도하지 않게 된다.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평가받는 대상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사라진 교육이 만드는 정체성

    교육이 과정을 잃어버릴수록 아이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나는 어떻게 배우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잘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로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학습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문제다.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되는 결과 중심 사고

    사실 많은 어른들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학교를 떠난 뒤에도 우리는 결과로 자신을 평가한다.
    얼마나 성취했는지, 얼마나 앞서 있는지, 무엇을 증명했는지.

    과정에서 겪은 감정들은 말해지지 않고
    혼자 견뎌야 할 몫으로 남는다.


    과정을 다시 교육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

    그래서 교육에서 과정을 다시 이야기하는 일은 중요하다.
    과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느린 속도를 허용하는 것이고,
    흔들림을 실패로 보지 않는 것이며,
    멈춤도 배움의 일부로 인정하는 일이다.

    과정을 존중하는 교육은 아이를 보호한다.
    아이를 결과 이전의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배우고 있는 존재로.


    교육이 지켜야 할 마지막 자리

    교육이 결과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만 남기고 과정을 지워버리는 순간
    교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잃는다.

    배움은 언제나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그 과정을 보존하는 것이다.
    아이의 속도, 아이의 흔들림, 아이의 질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남기는 교육

    어쩌면 교육의 본질은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과정이 사라지지 않게 지켜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 감정을 ‘관리’하려는 교육의 역설

    — 감정 교육이 왜 아이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지

    들어가는 말

    요즘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감정’이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감정 표현을 가르쳐야 한다, 감정 조절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
    듣기에는 다 맞는 말 같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감정 교육에는 묘한 모순이 있다.
    감정을 존중하겠다고 시작했는데, 결국 감정을 관리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뤄야 할 것’이 될 때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 있다.
    “지금 어떤 감정이야?”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해볼까?”
    “화가 날 땐 이렇게 해보자.”

    이 말들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반복되면, 아이는 어느 순간 이렇게 느끼기 시작한다.

    감정은 빨리 알아차려야 하고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결국에는 정리되어야 하는 것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경험이 아니라,
    관찰되고 점검받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감정을 느끼기 전에 ‘정답’을 먼저 떠올린다

    감정 교육이 강화될수록,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감정 표현을 더 어려워한다.
    슬픈데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화가 나 있는데도 “이 상황에서 화내면 안 될 것 같아”라고 느낀다.

    왜 그럴까?

    아이들은 점점
    “이 감정이 맞는 감정일까?”
    “지금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맞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감정은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감정은 혼자서 생기고 혼자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감정은 늘 관계 속에서 생기고,
    관계 속에서 가라앉는다.

    아이의 불안은
    “불안 조절을 해보자”는 말로 줄어들지 않는다.
    누군가 그 불안을 함께 버텨줄 때, 조금씩 괜찮아진다.

    그런데 감정 관리 중심의 교육은 이 과정을 건너뛴다.
    관계를 생략하고,
    아이에게 곧바로 자기 조절의 책임을 맡긴다.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는 감정을 적게 느끼는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를
    울지 않고, 차분하고, 문제 행동이 없는 아이로 착각한다.

    하지만 감정을 잘 다룬다는 건
    감정을 눌러버리는 능력이 아니다.

    • 울어도 괜찮았던 경험
    • 화를 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던 기억
    • 불안해도 누군가 옆에 있었던 시간

    이런 경험이 쌓일 때, 아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다루게 된다.


    감정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감정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면, 방향은 조금 달라야 한다.

    • 감정을 빨리 정리하라고 하지 않고
    • 반드시 말로 표현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 조절 전략을 먼저 가르치기보다

    아이의 감정 옆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어른의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

    “그럴 수 있지.”
    “지금은 말 안 해도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

    이런 말들이야말로, 아이에게는 가장 강력한 감정 교육이다.


    우리가 감정을 관리하고 싶어지는 이유

    아이의 감정을 관리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돌아보면,
    그 안에는 어른 자신의 불안이 있는 경우가 많다.

    • 아이가 울면 상황이 통제되지 않을까 봐
    • 감정이 커지면 감당이 안 될까 봐
    • 교실이나 관계가 흔들릴까 봐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빨리 정리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리가 아니라,
    함께 견뎌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감정을 가르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감정을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빨리 안정시키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남겨주는 것이다.

    감정은 관리될 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해받을 때 자리를 잡는다.

  • 감정을 넘어선 사고의 기능: 진정한 배움의 의미

    서론

    나는 오랫동안 감정과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 분석을 해 왔다.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기쁘다. 슬프다. 즐겁다 등의 감정만 오랫동안 써 온 나는 특별히 복잡하고 어렵다고 할만한 감정의 세계를 느껴보지 못했다. 감정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내가 20대 후반 무렵 몸이 아프고 나서부터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슬펐다. 비록 죽을만큼 아픈 병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꿈을 위해 달려왔던 시간을 모두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수 있었던 사건이라 나를 너무 무섭고 두렵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병으로 인한 후유증을 받아들이고, 타협했을 무렵부터 나는 나의 깊은 감정에 몰입하게 되었다. 나는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였다. 감정을 잘 풀어서 말할 수도 없었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슬픈일이 있어도 눈물이 뚝뚝, 억울한 일이 있어도 눈물이 뚝뚝, 화가나도 눈물이 뚝뚝 모든 것이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 전까지는 감정을 많이 억압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거나 한 적이 별로 없는 상태로 살아왔었던 것 같다. 그 억압이 이제 눈물이 되어 나타나는 구나…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감정적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아픔을 치유할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내가 경험한 이 세상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아파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나에게 눈물은 나를 치유해 주는 하나의 선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 속에는 감사, 연민, 슬픔, 억울함, 불안 등이 엉켜져 있었다. 그 누구보다 이 감정들을 해석하고 싶은 사람은 나였으며, 이 불확실한 애매모호함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해석이 쉽게 되지만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런 나의 눈물을 분석하고 해석한 결과, 내가 정말 좋은 사람임을 깨달아 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나는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지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고, 나는 대신에 정말로 공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 얼마나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 그리고 얼마나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인지 등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결론은 나의 그저 얽혀 어렴풋이 있던 감각이 생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완성되었다. 감각적인 느낌으로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던 나의 감정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 나는 나에 대해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 생각해볼 비온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라는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배움을 확장한다. 감정은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오랫동안 배척되어온 것이지만, 이는 분명 이해하고 알아나가야 할 인간이 가진 본능 중의 하나이며, 이를 이해하면 이해할 수록 우리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비온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본론

    (1) 책 요약

    비온은 감정이나 경험은 제대로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배움이 된다고 하였다. 인간은 감각과 감정을 매일 경험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고의 과정으로 변환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서도 그렇다. 오랫동안 감정에 대해서 탐구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이성적 사고를 통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하는 능력은 단지 태어나면서 바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라 나면서 계속 발달되고 발전되어간다. 비온은 이러한 감각과 감정을 의미있는 사고로 전환시키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알파 기능’이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어머니는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면, 아이가 감정에 대해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받아들이고, 해석해주고, 이해시켜 주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계속적으로 하다 보면, 그것을 온전히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고를 배워가는 시작이 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항상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나 감각이 너무 강하여 사고로 바뀌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을 바로 ‘베타 요소’라고 한다. 알파 기능을 통해 사고가 잘 작동을 할 수가 없으면, 베타 요소는 신체 증상, 불안 등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어진다. 이렇듯, 우리는 감정과 감각을 느끼면서도 많은 정보를 처리하지 못할 때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것으로부터 항상 모르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확실한 결론이 없다. 이 과정을 잘 견뎌내어 사고를 자유롭게 사고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 표현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바로 배움이다. 배움은 모르는 상태에 계속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힘으로 견뎌내어 하나씩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경험이다. 진짜 배움은 내가 모르고 있음을 알고, 모른채 견디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2) 교육학적 시사점

    – 배움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소화 과정’이다

    교사는 지식 전달자이기 전에, 학생의 감정과 경험을 소화 가능하게 만드는 조력자이자 촉진자여야 한다. 파커 J. 파머가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교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가져야 좋은 가르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교사는 지식의 전달을 1순위로 꼽고 있으며, 객관주의적인 사고가 지식의 구조에서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머는 선생님으로서 먼저 해야할 일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교사 자신을 먼저 이해하고 소화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함을 말한다. 그 소화의 과정이 있어야 학생들 또한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그들의 감정을 제대로 해석하고 소화할 수 있게 해주며 그때부터 학습이 시작되게 해 줄 수 있다. 교사는 정보 전달이라는 가르침의 목적에서 벗어나 자신을 이해하고 알며, 우선적으로 학생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학생들이 감정을 소화하고 배움을 가능하게 하도록 할 수 있다.

    –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

    비온은 사고의 내용보다는 사고의 능력을 중시하였다. 즉 무엇을 사고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고하느냐, 왜 그런 것이냐 등의 과정을 더 중시한 것이다. 사고의 내용은 즉,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정적이고 결과중심의 사고를 해 나가고, 정확한 답을 추구해 간다는 이야기이다. 어떻게 사고하는지, 왜라고 질문하는 것은 배움의 방법적 측면을 더욱더 고려한다.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항상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이런 명확하지 못한 상황을 견디고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방법을 찾아나간다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걸어가기에 항상 잘 모르고, 어떤 것을 해야할지 망설이며, 이해할 시간이 부족하다. 즉 방법을 찾아나갈 때 그 답은 변화할 수 있고, 언제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모르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탐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확보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즉 그러한 시간은 나에게 순간 순간 정확한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사고의 과정 행하는 사고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삶에 적용된다. 이는 자기주도학습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가능하다.

    – 교사-학생 관계의 ‘알파 기능’화

    교사-학생 관계는 ‘알파 기능’을 실천하는 관계여야만 한다. 즉,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교사가 학생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의미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다시 학생들에게 그 감정에 직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계속적으로 반복해 나갈 때 학생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사고로 전환할 힘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감정이 사고보다 먼저 목소리를 내는 경우를 경험해 본적이 있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감정(슬픔, 불안, 분노 등)을 느끼게 되면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흐른다. 감정이 왜 나타나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표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때 나는 감정을 사고로 언어로 전환할 힘이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때의 감정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이 사고로 전환되지 않으면 일단 내가 어떤 상태인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며,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경험에 의하면 ‘알파 기능’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동안 그 감정에 대해서 분석과 비판, 직면 등을 해 나가야지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교사일 것이며, 교사는 가르치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학생들을 보살피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알파기는은 학교에서의 상담교육이나 감정코칭과 같은 작업과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 배움의 장애는 단순한 능력 부족이 아니라, 감정의 과잉일 수 있다.

    어떤 학생은 ‘못 배워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과잉이 되어 사고가 멈춘 상태일 수 있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내가 아팠을 때의 경험이다. 나에겐 내가 아픈 일이 너무 큰일 이었는데 그때 너무 많은 감정들을 한꺼번에 느껴졌다. 내가 그때까지 느껴본 감정의 종류들보다 더 많이 느끼고 소화를 못시켰던 경험이 있다. 너무 많고 복잡한 감정을 해석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도 하고, 해석이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 또 자기 검열을 해 봐야 하고, 정확한 감정의 길을 찾으려고 하니 애매모호한 감정의 길을 한번에 건널 수 없고 그 상황을 견뎌내야 해서 너무 어려웠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말을 잃어 버렸다. 말을 하려고 해도 꼬이기만 하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없고 항상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지식의 구조 앞에 나는 홀연히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배움을 해 나가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지적 장애가 생긴다면 그것은 그들의 능력부족이 아니라 정말 우리를 구성하는 것 중에 감정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소화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지 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감정이 과잉이 되면 인지 기능이 마비가 되는 경우기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교사가 단순한 설명을 하거나 보충수업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이 정서적으로 안전하게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해석하고 지지를 해 주는 것을 필요로 한다.

    결론

    비온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학생의 감정의 과잉에 대한 이해와 그로 인한 사고의 정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배움의 힘을 어떻게 길러주는가?” 우리 나라의 교육은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가?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이러한 의구심을 품고 쓴 책이 비온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학생들의 감정과 혼란을 감당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알파 기능을 활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베타 요소는 학생들의 신체를 통해 그 작용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정서적, 관계적 지지를 해 주는 것이 곧 배움의 일환이며, 학생들이 진짜 자기를 만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교육에서 치유가 이루어 지려면, 우리는 정서와 사고가 연결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그 연결이 가능해지기까지는 ‘모른다는 고통’을 함께 견뎌내야 한다. 비온의 교육은 그저 ‘생산성 있는 학습’이 중요한 것을 넘어 깊이 있는 인간을 성장시키는 교육으로 우리가 나아가도록 한다는데 그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알프레드 비온(2012). 경험에서 배우기(윤순임 외 옮김). NUN.(원제 1962).

    파커 J. 파머(2024). 가르칠 수 있는 용기(김성한 옮김). 한문화. (원제 1998).

    [영어 요약]

    Bion asks us this question: “How does understanding a student’s emotional excess and the resulting suspension of thinking help us cultivate the power of learning?” In our country’s education system, emotions are not regarded as important—then how can students be given a genuine opportunity to truly learn? This is the question that arises. It is with this doubt in mind that Bion wrote the book Learning from Experience. In this book, we learn that it is essential to use the alpha function to help students endure their emotions and confusion and to enable rational thinking. Without this, the beta elements manifest themselves through the student’s body. Therefore, providing emotional and relational support to help students understand and express their feelings is part of learning itself and a way for them to encounter their true self. For healing to take place in education, we must help connect emotion and thought, and this connection requires us to endure together the pain of not knowing. Bion’s vision of education goes beyond mere “productive learning” and holds significance in guiding us toward an education that fosters the growth of a deeply developed human being.

    [일본어 요약]

    ビオンは私たちにこう問いかけています。”学生の感情の過剰さと、それによって思考が停止することを理解することは、私たちの学びの力をどのように育てるのか?” 韓国の教育では感情を重要視していませんが、そのような中で、学生に本当に学ぶ機会をどのように与えているのでしょうか?この疑問を抱きながら書かれた本が、ビオンの『経験から学ぶ』です。この本では、学生の感情や混乱を受け止め、理性的な思考ができるようにするためには、アルファ機能を活用することが不可欠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そうでなければ、ベータ要素は学生の身体を通してその作用を現します。したがって、学生が自分の感情を理解し、表現できるように、情緒的・関係的な支援を提供することは、学びの一環であり、学生が本当の自分に出会う方法なのです。このように、教育において癒しが実現するためには、私たちは感情と思考がつながるように支援しなければならず、そのつながりが可能になるまで「わからないという苦しみ」を共に耐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ビオンの教育は、単なる「生産性のある学習」を超えて、深みのある人間を育てる教育へと私たちを導くという点に意義を持っています。

  • 진정한 배움의 공간: 놀이

    놀이는 무엇을 가르치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서론

    나는 완벽주의가 있다. 이 완벽주의는 어릴 적부터 만들어진 생각이자 습관으로, 나 자신에 대한 높은 기준을 들이대고 높은 이상을 따라가며, 내가 생각하는 그 길이 열리지 않았을 때는 깊은 좌절을 맛본다. 어릴 적부터 뭐든지 잘하고 싶은 내가 있었다. 특히, 밤을 세워가면서 미술 과제를 해야만 했고,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은 버리고 새롭게 만드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잘 못하는 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수도없이 연습했다. 그리고 칭찬받았다. 지금 생각나는 일화는 바로 이단뛰기 줄넘기이다. 나는 사실 그때가지만 해도 운동을 잘 못하는 학생이었는데 시험 점수를 잘 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체육도 잘해야만 했고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또 열심히 연습했다. 그래서 결국 이단 줄넘기를 해내고 만점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것을 해내는 과정은 나에겐 참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나는 어릴적부터 뭐든 완벽하게 해 내고 싶은 마음이 큰 아이였다. 그것이 좋은 점은 역시 열심히 하게 되고, 성취를 하게 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원하는 일이 잘 안되었을 때는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가서 나를 달달 볶으며, 나의 높은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난리가 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던 중 나는 잘해내면 잘해 낼수록 더욱더 이상은 높아져만 가고 내가 가야하는 길은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이 컸는지 내가 준비를 잘 하지 못했는지 나는 다양한 실패를 했다. 너무 많은 크고 작은 실수, 실패를 맞보다 보니 조금은 현실적이 된 것 같지만, 아직도 나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다. 내가 이런 경험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내가 높은 이상을 바라보기만 했고 그것을 이루기만 간절히 바라오는 동안 현실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의 여유도 가질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처럼, 여유롭게 즐겁게 현실을 마주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도널드 위니캇의 책 『놀이와 현실』은 내가 생각하기에 ‘놀이’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면서 진정으로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놀이는 너무 이상적인 곳으로 가려고만 하지 않고 나의 높은 기준을 강조하기만 하지 않고 현실과 잘 조화를 맞추며 조절을 하면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인 것이다. 이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진짜 자기’를 만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내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나 그것은 바로 ‘진짜 자기’이다. 나는 오늘 도널드 위니캇의 『놀이와 현실』이라는 책을 통해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면서 교육학적인 시사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예정이다. ‘놀이’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본론

    (1) 책 요약

    – 놀이는 배움의 시작점이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웃는 얼굴, 심각한 얼굴, 장난감에 관심이 많은 얼굴, 신기해 하는 얼굴 등 얼굴 표정이 다양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재미도 있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작은 세상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고, 작은 세상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놀이’에 적응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경험하는 아이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아이의 배움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 무엇보다 아이들은 단지 책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알아가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며, 자신의 흥미를 알아가고 자신의 배움을 실천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놀이’는 배움으로 향하는 다리가 되어준다.

    – 진짜 배움은 ‘창의적 몰입’에서 온다

    아이는 ‘놀이’에 몰입한다. 몰입 시간은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없으며,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 이 몰입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자신과 만나게 된다. 이는 진짜 자기이다. 다른 사람의 억압을 받지 않고 이해를 구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이것은 단지 언어나 숫자 등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하면서 비롯되는 자유로운 배움이다. 자유로운 배움은 외부의 부정적인 자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것도 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며, 그를 통해 새롭고 유용한 창조적인 경험에 도달하게 된다. 실수를 해도 상관없다. 그 실수를 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진짜 자기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축복이다.

    – 교육은 놀이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계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지만, 현대의 교육은 교육은 지식과 정보를 주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깨닫고 그 삶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것일 것이다. 즉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한 하나의 과정이긴 하지만, 삶에 대해 깊이 질문하고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연습은 누구도 해 줄 수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교육은 좀더 놀이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학생이 자율적으로 탐색하고 실수하고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7세 고시’라는 말이 생성될 정도로 학구열이 극단적으로 심하고 주입식 교육의 그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바탕으로 교육을 계속 진행해 나간다면, 아마 아이들은 그 교육의 부정적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즉, 교육도 놀이처럼 보호아래 안전하고 자유롭게 해 나갈 수 있어야만 한다.

    – 교사는 ‘충분히 좋은 어른’이다

    교사는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스킬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교사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아이곁에 머물며 실험을 하면서 함께 실패와 좌절의 아픔을 견뎌줄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런 관계는 따뜻하고, 안정적이며,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어줄 수 있다. 이런 관계는 아이에게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형성하는 나와는 거리가 있는 거짓 자아가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는 참된 자아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

    (2) 교육학적 시사점

    『놀이와 현실』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육학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놀이가 가진 장점을 인정하고 교육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놀이이라는 행위를 열심히 일한뒤에 잠시 쉬는 보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잠자고, 집에서 쉬는 것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놀이’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간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놀이’를 경험하는 그 자체가 아이에게 학습을 하는 장이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유아교육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놀이’를 초등 및 중등 교육에서 활용하여, ‘놀이’를 통한 학습을 해 나가야 한다. 둘째, ‘놀이’를 통해서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학습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놀이’는 현실과 이상을 아우르는 창의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학교는 딱딱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배워야할 지식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지식 습득의 과정을 시험을 통해 평가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실제적인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 단지 주지주의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원인이 되며, 배움에 대한 능률을 떨어지게 만든다. ‘놀이’는 중간지대로서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학습 공간을 마련해 준다. 이는 실수와 실패를 자주 하더라도 두려움없이 다시 배움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심리적인 여유로움과 보다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배움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셋째, ‘놀이’를 통해 사고나 감정이 억압되지 않고, 자유롭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만들 수 있는 자기 표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교육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능력을 발현하고 이를 토대로 자기답게 살아나갈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일것이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개성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며 그 자리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주된 기능이다. 이는 학습자 중심, 경험 중심, 과정 중심 등의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감정을 이해하고 자기의 표현을 알아차려 주며, 계속적으로 아이의 열린 질문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진짜 자기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넷째, ‘놀이’를 교육에 적용한다면, 교사의 역할을 재정의 해야한다. 현재는 교사의 교권이 급격히 추락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선생님이 가진 지식에 의존하기 보다, AI의 발전으로 많은 지식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질문하면 어떤 답도 찾아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기능을 해야만 한다. 좋은 선생님의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교사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움을 제대로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사는 그들이 가진 지식을 응용하고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양질의 지식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아이들 중심의 교육, 발단 단계를 존중하고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전인적인 교육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

    오늘은『놀이와 현실』이라는 책을 통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움을 경험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며 진짜 자아를 찾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놀이’는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활동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엄격하게 교육의 기능을 강요하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똑똑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해왔다. 그 똑똑함이라는 것이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육으로서의 실격을 의미한다. 똑똑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많은 변화를 가져오긴 했으나, 더 삭막하고 경쟁하는 사회에서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자로서 좌절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역기능을 제대로 살펴보고 ‘놀이’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더욱더 좋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바래본다.

    참고문헌

    도널드 위니캇(1997). 놀이와 현실.(이재훈 옮김). 현대정신분석연구소(원본 출판 1971)

    [영어 요약]

    Today, through the book “Play and Reality,” I came to understand that children experience learning, act creatively, and discover their true selves through play. Through play, children come to understand their emotions and gradually learn who they are. Play is an essential and irreplaceable activity for children. However, we have increasingly demanded that education serve a more rigid function, pushing children to become “smart people.” If being smart merely means acquiring more knowledge, then that is a failure of what education should truly be. Although intelligent individuals have brought about many changes in the world, they have also created a more competitive and desolate society. Many children, unable to adapt to this environment, are left behind, feeling like failures and struggling in silence. It is crucial for us to critically examine the dysfunctions of such an education system and reconsider the potential of play. By doing so, perhaps we can create a space where children can dream of a brighter, more hopeful future.

    [일본어 요약]

    今日は『遊びと現実』という本を通して、子どもたちが「遊び」を通じて学びを経験し、創造的に行動し、本当の自己を見つけていくことができる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た。子どもたちは遊びを通して自分の感情を理解し、自分がどのような人間であるかを少しずつ知っていく。「遊び」は子どもにとって欠かせない大切な活動なのである。しかし私たちは、より厳格に教育の機能を求め、それを子どもたちに押し付け、「賢い人間」を作ろうとしてきた。その「賢さ」が知識を多く習得することであるならば、それは教育として失格であると言えるだろう。賢い人間が生み出す社会は多くの変化をもたらしたが、その一方で、より殺伐とし、競争の激しい社会となり、大多数の子どもたちはその環境に適応できず、失敗者として挫折しながら生きる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このような教育の逆機能をしっかりと見つめ、「遊び」の可能性を再確認することが、今の私たちに求められ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そうすれば、子どもたちがもっと希望に満ちた未来を描ける空間を創り出せ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

  • 겉모습 뒤: 방어기제의 이해와 정서교육

    서론

    나는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졌다고 혼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치있는 이유는 내가 1등이기 때문이라고. 만약 내가 1등이 아니라면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나는 무조건 1등이어야만 했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는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공부의 재미를 찾기 보다는 성적에 집중하게 되는되는 시스템을 따라다녔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일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언제나 내 자신에게 가혹한 숙제를 줬고 그것을 해내야했으며, 실패했을 때는 무능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고, 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스스로 방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못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경험은 삶을 살아가며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스스로를 억압했던 경험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살펴볼 때, 흔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단지 성적으로 보여주는 등수에 집착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더욱더 성숙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의 감정과 의지, 노력, 이해, 갈등 등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학생들의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 무시해버린다면 분명히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하게 될 것이다. 안나 프로이트의 『자아와 방어기제』는 마음의 구조와 방어기제를 설명함으로써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교육하여야 함을 시사해준다.

    본론 1

    『자아와 방어기제』에서는 자아를 능동적으로 해석하며, 이 자아의 심리 구조인 방어 기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안나 프로이트는 자아를 초자아의 규율과 이드의 충동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균형을 잡고 타협을 위한 심리 구조로 바라보며, 방어기제는 자아가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되면 사용하는 심리적 완충장치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방어기제를 사용함으로써, 방어기제가 불안한 정서를 안정시키거나 혹은 자존감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반면에 방어기제가 과할 경우에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회피하고 대인 관계에서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단점도 있다는 사실 또한 안다. 이처럼, 방어기제는 단순히 병리적인 것을 이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방어기제는 단순히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하는 이상한 문제 행동이라기보다는, 자아가 현실에서 열심히 생존하기 위해 초자아와 이드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고군분투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방어기제는 다음과 같다.

    (1)억압(Repression): “하나의 관념이 의식으로부터 제거되는 방어 과정”(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2) 투사(Projection):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나 생각을 외부 세계로 옮겨놓는 정신 과정” “개인 자신의 흥미와 욕망들이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처럼 지각되거나 자신의 심리적 경험이 실제 현실인 것처럼 지각되는 현상”(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3) 합리화(Rationalization): “개인이 수용할 수 없는 다른 동기들을 무의식적으로 감추고 있는 상태에서, 특정 행동이나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의식적인 설명을 사용하는 정신 과정”(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4) 퇴행(Regression): “보다 미성숙한 정신 기능의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5) 승화(Sublimation): “본능적 욕동 에너지가 자아초자아에게 보다 용납될 수 있는 목표를 위해 전환되는 것을 일컫는 용어”(네이버 지식백과, 연도 미상)

    이러한 방어기제는 위의 서론에서 본 나의 경험이야기와 더불어 학교에서 많이 사용될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의 방어기제를 잘 이해하는 것은 나아가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론 2

    자아와 방어기제에 대한 이해를 통해 교육학적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정서교육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생, 교사 간의 다양한 감정 흐름이 존재한다. 이러한 감정적 흐름이 부정적일 때에는 서로 자신의 자아가 현실적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특히, 스스로 또는 타인이 생각하기에 부정적인 방어기제의 사용 빈도가 점차 높아지면 사용하는 방어기제에 대해서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방어기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그룹을 만들어 있을 법한 상황을 제시하고 각자의 학생들이 스스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즉, 학생들은 이 방어기제를 내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이 방어기제의 뜻이 무엇인지,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방어기제를 알아가는 것은 자신이 어떠한 감정, 마음의 상황과 패턴 속에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다. 그 후에 방어기제를 어떻게 올바르게 사용하게 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을 행할 수 있게 한다면 학생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불안을 언어화하고 진실하고 성숙한 방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연습하면 할수록 정서를 강화하는 교육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둘째, 부정적인 방어기제를 쓰도록하는 학생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학교는 실패와 약함 등을 반드시 피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서로 경쟁하고 성적에 매달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패와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실패공유 등을 일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이스트에서는 실패의 긍정적인 효과를 공유하면서 더 유연하고 배움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학생들이 기르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실패를 한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성장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준비로서 실패를 공유하고 밝히는 활동을 확산시키면 좋을 것 같다.

    결론

    우리는 『자아와 방어기제』를 읽고 자아와 방어기제는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자아는 초자아와 이드 사이에서 현실적 균형을 잡는 심리 구조였으며,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적이거나 불안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완충 장치였다. 방어기제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하게 사용하는 장치임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이러한 방어기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가르쳐 준다면 이는 정서교육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정적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만드는 그런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한 예로 실패공유와 같은 활동을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해 나간다면 학생들과 학교의 신뢰를 형성해 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연도 미상).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승화(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8639&docId=655870&categoryId=48639)

    네이버 지식백과(연도 미상).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억압(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8639&docId=655891&categoryId=48639)

    네이버 지식백과(연도 미상).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퇴행(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8639&docId=656029&categoryId=48639)

    네이버 지식백과(연도 미상).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투사(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8639&docId=656030&categoryId=48639)

    네이 지식백과(연도 미상). 네이버 지식백과 정신분석용어사전. 합리화(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8639&docId=656038&categoryId=48639)

    안나 프로이트(2015). 자아와 방어기제.(김건종 옮김). 열린책들.(원본 출판 1966)

    [영어 요약]

    Through reading Ego and Mechanisms of Defense, we explored what the ego and defense mechanisms are, and how they function. The ego acts as a psychological structure that maintains a realistic balance between the superego and the id. Defense mechanisms are strategies that emerge to protect the ego when it faces threatening or emotionally overwhelming situations. We noticed that students also use a variety of these mechanisms in their school lives. Helping students understand what these mechanisms are and how they themselves rely on them can significantly enhance emotional education. Furthermore, to reduce the tendency to rely on negative forms of defense, activities such as sharing experiences of failure can help shift the environment. Rather than focusing only on students’ outward behaviors, it is important to gain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ir inner emotional world and guide them toward thoughtful reflection. This approach can be a meaningful foundation for building trust between students and the school.

    [일본어 요약]

    『自我と防衛機制』を通して、自我と防衛機制とは何か、それらがどのように働くのかを学びました。自我は、超自我とイドの間で現実的なバランスを取る心理的な構造であり、防衛機制とは、自我が脅威や強い不安を感じる状況で、それを守るために現れる心の働きです。学生たちも学校生活の中でさまざまな防衛機制を使っていることが分かりました。これらの仕組みを理解し、自分自身がどのように使っているかに気づけるようにすれば、情緒教育の向上につながるでしょう。また、否定的な防衛機制を使わせるような環境を見直すために、「失敗の共有」といった活動を取り入れることも一つの方法だと考えられます。学生の外に現れる行動だけを見るのではなく、その背景にある気持ちや心の状態を深く理解し、内省を促すことが、生徒と学校の間に信頼関係を築くための大切な土台となるでしょう。

  • 미래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과목: 회복

    들어가는 말

    나는 오랫동안 교육을 연구해 왔지만, 한 가지 질문 앞에서는 늘 멈추게 된다.
    왜 우리는 실패 이후를 가르치지 않는가.

    학교는 늘 “다음 단계”를 말한다.
    다음 학년, 다음 시험, 다음 목표.
    하지만 인생에서 더 자주 마주하는 순간은, 다음이 아니라 멈춤이다.
    무너졌을 때, 지쳤을 때, 더는 나아갈 힘이 없을 때 말이다.

    그런데도 교육은 그 순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실패는 극복해야 할 사건으로만 설명되고,
    좌절은 빨리 지나가야 할 감정으로 취급된다.
    쉼은 노력의 보상일 뿐, 배워야 할 능력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실패 후 회복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

    아이들은 자라면서 수없이 실패한다.
    성적에서, 관계에서, 기대에서, 자기 자신에게서.
    하지만 그 실패 이후 어떻게 자신을 다시 정돈하는지는 배우지 못한다.

    대신 배운다.
    조금 더 참아야 한다고.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은 쉴 때가 아니라고.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마음의 피로를 참고 넘기며,
    결국 번아웃이라는 형태로 멈춰 서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번아웃은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회복을 가르치지 않은 교육의 결과라고.


    미래교육에 정말 필요한 능력

    미래교육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창의성, 문제 해결력, 적응력.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능력이 있다.

    무너진 후에도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

    회복은 성격이 아니다.
    타고나는 기질도 아니다.
    회복은 학습될 수 있는 기술이다.

    •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알아차리는 능력
    • 쉬는 동안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
    •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허락하는 감각
    • 속도를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

    이 모든 것이 회복의 요소다.

    그런데 우리는 이 어떤 것도 교과로 가르치지 않았다.


    쉬는 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필요하다

    “쉬는 법을 가르친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쉬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은
    자기 상태를 감지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 지금 나는 왜 피곤한가
    • 이 피로는 몸의 문제인가, 감정의 문제인가
    • 쉬고 난 뒤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교육이 할 일이다.


    멈춤·재정렬·속도 조절을 배운다는 것

    회복 교육의 핵심은 세 가지다.

    멈춤
    계속 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아는 것.

    재정렬
    처음 계획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택을 허용하는 것.

    속도 조절
    빠르지 않아도 도태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몸으로 아는 것.

    이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성공해도 불안하고,
    쉬어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 교육은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교사라면, 이미 지쳐 있을지도 모른다.
    학부모라면, 아이를 어디까지 밀어야 할지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성인이라면, 잘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공허한지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회복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은 많다.
    그래서 이 과목은 모든 세대를 위한 미래교육이다.


    마무리하며

    회복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결국 “무너지지 말라”고만 말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인간은 무너지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무너지고, 멈추고, 다시 돌아오는 존재다.

    미래교육이 진짜 미래를 준비하려면
    더 많이 가르칠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르쳐야 한다.

    그 과목의 이름은
    아직 교과서에 없지만,
    분명히 필요하다.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