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감정과 교육

  • 감정을 ‘관리’하려는 교육의 역설

    — 감정 교육이 왜 아이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지

    들어가는 말

    요즘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감정’이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감정 표현을 가르쳐야 한다, 감정 조절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
    듣기에는 다 맞는 말 같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감정 교육에는 묘한 모순이 있다.
    감정을 존중하겠다고 시작했는데, 결국 감정을 관리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뤄야 할 것’이 될 때

    교육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 있다.
    “지금 어떤 감정이야?”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해볼까?”
    “화가 날 땐 이렇게 해보자.”

    이 말들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반복되면, 아이는 어느 순간 이렇게 느끼기 시작한다.

    감정은 빨리 알아차려야 하고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결국에는 정리되어야 하는 것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사라지는 경험이 아니라,
    관찰되고 점검받는 대상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감정을 느끼기 전에 ‘정답’을 먼저 떠올린다

    감정 교육이 강화될수록,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감정 표현을 더 어려워한다.
    슬픈데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화가 나 있는데도 “이 상황에서 화내면 안 될 것 같아”라고 느낀다.

    왜 그럴까?

    아이들은 점점
    “이 감정이 맞는 감정일까?”
    “지금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맞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감정은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감정은 혼자서 생기고 혼자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감정은 늘 관계 속에서 생기고,
    관계 속에서 가라앉는다.

    아이의 불안은
    “불안 조절을 해보자”는 말로 줄어들지 않는다.
    누군가 그 불안을 함께 버텨줄 때, 조금씩 괜찮아진다.

    그런데 감정 관리 중심의 교육은 이 과정을 건너뛴다.
    관계를 생략하고,
    아이에게 곧바로 자기 조절의 책임을 맡긴다.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는 감정을 적게 느끼는 아이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잘 다루는 아이를
    울지 않고, 차분하고, 문제 행동이 없는 아이로 착각한다.

    하지만 감정을 잘 다룬다는 건
    감정을 눌러버리는 능력이 아니다.

    • 울어도 괜찮았던 경험
    • 화를 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던 기억
    • 불안해도 누군가 옆에 있었던 시간

    이런 경험이 쌓일 때, 아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다루게 된다.


    감정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감정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면, 방향은 조금 달라야 한다.

    • 감정을 빨리 정리하라고 하지 않고
    • 반드시 말로 표현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 조절 전략을 먼저 가르치기보다

    아이의 감정 옆에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어른의 태도가 먼저 필요하다.

    “그럴 수 있지.”
    “지금은 말 안 해도 괜찮아.”
    “나는 여기 있어.”

    이런 말들이야말로, 아이에게는 가장 강력한 감정 교육이다.


    우리가 감정을 관리하고 싶어지는 이유

    아이의 감정을 관리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돌아보면,
    그 안에는 어른 자신의 불안이 있는 경우가 많다.

    • 아이가 울면 상황이 통제되지 않을까 봐
    • 감정이 커지면 감당이 안 될까 봐
    • 교실이나 관계가 흔들릴까 봐

    그래서 우리는 감정을 빨리 정리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리가 아니라,
    함께 견뎌주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감정을 가르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감정을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빨리 안정시키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순간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남겨주는 것이다.

    감정은 관리될 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해받을 때 자리를 잡는다.